Liebesfreud

2018.12.24 23:59 from 隨筆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아직까지 확실한 정체를 없는 우주의 95.1% 암흑 에너지와 물질과 대조해 84.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나머지 4.9% 자유자제로 다룰 있는 매우 근접한 시점에 있다. 쾌속적 과학 발전의 발단은 402년 전 발생한 뉴턴의 철학에 근거한다. 분명 고대 수학이나 아카데메이아의 기초없이는 현재의 학문이 가능할 없다. (헤겔은 에테르를 학문이라고 한다.) 과학이 우주Daughter Universe와 다중우주론인 거품Bubble을 논하고 지구에 근접한 소행성들과 화성 자원에 시선 돌릴 있는 이유 모두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르네상스 중심에서 꽃을 피워낸 케플러의 노고와 그외 많은 "관찰자"들의 덕임은 자명하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의식한다는 것은 5가지 감각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의 주파수에 맞춰진 경우다. 누군가가 어떤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색이 지닌 파동에서 기쁨과 평온을 느낀다는 의미다. 양자역학의 파동-입자 이중성에서 어떤 대상에 관찰자가 있을 경우 이를 (유기체이자 생명체인) 입자로 분류하여 (무기체이자 물체와 닫힌 체계인) 두 파동이 만났을 때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는다. (쌍둥이) 광자가 "이중 슬릿을 통해 나아가는 것은 실재의 물질이 아니라 확률에 불과하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파동이라는 잠재적 공간은 관찰을 통해 입자라는 존재의 "상"을 만든다. (언어는 "상징"이다. 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 모양 상像, 상象은 코끼리를 옆에서 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요컨대 무지개의 존재는 관찰자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카메라의 경우, 조리개의 노출 시간과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피사체를 담은 이미지는 제각기 다른 결과물을 초래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판가름하는 것은 저마다 개성있는 감각과 오성이고, 그 대상의 이미지는 본디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관측자는 상대의 시간이 지연되거나 팽창된다고 느끼고, 양자역학은 두 관측자의 감각과 오성에 따라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반면 동일한 것은 구분의 기준이 무엇에 대해 의식하는 바로 "나"self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달을 보지 않을 때에도 달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스로 이루어진 목성은 만질 수 없으나 볼 수 있다. 산소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숨·쉬므로 존재를 확신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의 복잡한 실체를 5가지 감각으로 세분화하여 정의하는 환원주의의 편협함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시각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촉각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느낀다는 것5은 시상이 수용체(외수용기exteroceptor와 내수용기interoceptor)로부터 감각정보를 받아 대뇌피질 해당부분에 신호를 보내 지금까지의 순수기억과 대조하는 행위다. 고민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 하지만 '고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으로 위의 담론은 4.9%를 알고 있다고 믿는 존재의 편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시인의 시각을 구한다. 정신과 물질을 분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해 횔덜린은 우리가 느끼는 실체란 정신적으로 구성되었거나 비물질적인 것(파동)이라 구분한다. 횔덜린은 여신에게 "한 여름 만 주소서, 한 가을 만 주소서. 운명의 여신들에게"라고 말하여 삶의 아름다움으로 영혼의 안식을 되찾기 바란다. 목적론을 말하는 칸트는 물질(입자), 즉 존재에는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목적은 분명 기쁨이나, 사실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테아이테토스에게, 또 존재에게) 생명의 성질은 아름다움이다. (물질적인) 존재는 입자를 구하는 파동이다.

 

"시간이란 시계로 측정하는 대상이며, 우주는 자로 측정하는 대상이다. 공간이란 자를 들고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 우리의 시간은 선형적이나 "지구는 돈다". (그렇다면 열역학적 기준에서) 모래시계의 모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면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따라서 운동이 없으면 시간은 영원하다. 정의할 수 없는 낙조나 오로라를 신기하다, 미묘하다, 괴상하다, 기이하다, 절묘하다, 오묘하다라고 일컫는다. 분명 삶에서 정의되지 못한 것이 아름답다. "인간의 언어와 관념은 사물의 경계를 결정한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양자장론은 "너"를 정의하라고 한다. 양자장론은 관념이 눈을 뜨고 대상을 보고 정의하여 사물의 경계를 결정하라고 종용한다. "내"가 정의될 때 나는 더 이상 삶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다가갈 때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299 792 458 m/s로 이동할 때 비로소 시간은 멈춘다.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 중첩된 양자(쌍원자)는 한번도 분리된 적이 없는가. 존재의 공통분모가 쌍원자인가. "그렇다면 기다린 보람이 있어. 그대로부터 궁극을 빼앗아 냈나니, 진실로 신은 모든 원소{한 종류만의 원자로 구성된 물질} 안에 머물러 계시도다! 괴테" 나는 카메라고, 빛이 있으면 필름이 제작된다. 【힌두교에서 요가는 실천이고, 베다는 이론이다. 이같은 상Image을 만드는 것Veda을 그리스어로 이데아Idea라 하고, 라틴어로는 비디오Video(I see)라고 한다. 아유르베다Ayur-Veda(삶-앎)는 생명 혹은 장수라는 아유르와, 지식 또는 과학이라는 베다를 합친 것이다. 아유르베다는 신체에 공기의 기질인 '바타'와, 불의 기질인 '피타'와, 물의 기질인 '카파'라는 세 가지 근본적 생명력이 있다고 보고, 이것을 부패를 뜻하는 '도샤'라고 일컫는다. 두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 세 가지로 바타는 공기의 매개체인 '에테르', 피타는 불의 매개체인 '물', 카파는 물의 그릇인 흙으로 균형을 이룬다. 요가와 관련된 것이 일곱 차크라인데, 차크라는 원, 혹은 바퀴를 의미한다. 물라다라 차크라는 흙 원소,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물 원소, 마니푸라 차크라는 불 원소, 아나하타 차크라는 공기 원소, 그리고 비슈다 차크라는 에테르(정할 정精, 기운 기氣; 의사소통, 정신에너지) 원소와 관련이 있다. 남은 두 개는 "제 3의 눈이자 명령의 중심"을 뜻하는 아갸냐 차크라와 '천 개의 연잎'을 뜻하며 "우주적 참나{참 진眞, 나 아我; 진짜 나}이자 신성한 실재"인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있다. 인용.참고: 배다 입문 - 데이비드 프롤리

 

존재에게 탁월함arete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최고의 선이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 현상을 보고, 정신은 지성을 통해 형상eidos를 본다. 형상, 다시말해 상image이란 대상의 어떠한 상태고, 몸과 마음의 기능이 경지에 도달하여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인 '탁월함'이다. 플라톤은 메논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둥긂은 형태인가, 아니면 형태의 일종인가? 흼은 색깔인가, 색깔의 일종인가? {끈 이론,} 곧은 것{직선}이 형태인 것처럼 둥근 것{면}이 형태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게 바로 자네 주장이네. 메논 74b-75e, {관찰자에 따라 조리개의 노출 시간이 짧거나 길어도 결국 동일하게 하나의 상이 완성된다. 여기서 시간의 역설이 들어난다. Thus, 빛은 시간을 만든다.}" (텅 빔blank, 흰빛blanc, 검음black, 불꽃flame은 모두 같은 어원, *참고: 흰 - 한강) 플라톤은 "사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항상 색깔에 수반되는 것"을 형태라 하고, 형태는 입체의 한계라고 한다.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색깔이란 시각에 들어맞고 지각될 수 있는, 형태들의 유출물{필름}이라는 걸 말일쎄. {여기서 현상과 형상은 의식이고 무의식이다.} 메논, 76d" 정의를 앞서가는 "학문"을 탐구와 배움이라 하고, 탐구는 생각나기고 배움은 생각하기다. "탁월함에 관해서든 다른 것들에 관해서든 영혼이 어쨌든, 메논, 81d" 상상으로 상기anamnesis(생각 상想, 일어날 기起)하는 것이 탐구고, 회상으로 배움을 얻는 것도 상기다. "탐구와 배움은 결국 모두 상기니까 말일세. 81d" 플라톤은 메논의 전기가오리(변증술사)에 대해 (기하학을 모르는 아이에게 확신만으로 문제를 풀게하여) '너 자신을 알라'(베다와 같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 속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참인 확신들이 있는 거지? 85c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통해 지양relève("부정하면서 동시에 보존하는 것, 헤겔")의 이중적 의미, 즉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사변적 사유"(경험의 도움없이 순수 이성으로 생각나기)에 이른다. 사변적 사유는 물리학에서도 사용한다. *참고: 헤겔의 사변과 데리다의 차이, 조홍길}" (루소의 에밀에 대해) 나(우리)의 의도는 학문이고, 나의 의도는 기쁨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인식"을 빛의 산파(탁월함에 교사가 없다는 것이 아닌,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라고 한다. "그러므로 탁월함이 영혼 속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필연적으로 유익하다면, 그것을 앎이어야만 하네. 왜냐하면 영혼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그 자체에 있어서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지만, 앎이 더해지느냐 무지가 더해지느냐에 따라 유익하게도 유해하게도 되기 때문이지. 88d" 앎은 빛이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 (운동함에 있어서) 지와 무지에 따라 정의의 척도가 결정된다.  

 

헤겔의 「논리학」의 -무-생성은 앎-삶-운동이다. 부정하면서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 언어다. 까닮은 학문을 탐구와 배움이라 하면 탐구는 생각나기고 배움은 생각하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관념적인 것이 실재적으로 나타난 것이고, (생각하는 나Cogito는 타자인 생각나는 나를 정의하지 못하므로,) 데리다는 운동이 있으므로 (음성언어에서) 문자화된 언어에 차연(차이diffèrence와 지연deferment)이 있다는 것이다. "차연에 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흔적들을 따를 수 있을 뿐이다. 데리다 평전, 제이슨 포웰" 따라서 정신에 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신의 흔적 따른다. 언어가 문자화 되기 위해서 삶은 앎을 반드시 목격해야 한다. 현상과 형상사이 (헤겔 왈 절대자, 앎으로) 승화되지 못한 정신이 데리다의 유령, 찌꺼기다. 맑스의 주관적이고 고립적인 5'즉자적 유령'은 아름다움을 위한 '대자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헤겔의 정신은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 담겨져 있고, 빛은 시간을 만듦으로 관찰은 공간의 계념으로 확장된다. 입자를 구하는 존재는 현상을 관찰해 형상(공간)을 정의할 수 밖에 없고, 대상을 보고 있지 않으면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파장은 가시광선380~770㎚ 정도다.) 내가 '알고 있는'5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다. 거울 속 나는 현전적인(나타날 현現, 앞 전前) 의식을 지닌 (운동하는) 존재다. 여기서 내가 순수 기억으로 언어화되면 나는 과거 묻혀 비현전(아닐 비非)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코기토는 현전적이여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항상 필멸의 일시적인 '표현'이고, 필연적으로 그것은 사용되는 매 순간에 ¨나는 죽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리다 평전" 데리다는 드만의 회상rememberance를 통해 '나'는 나를 기억하는 상대의 상像을 위해 존재하는 '기억의 장소', 즉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를 넘어서 살아남는 것, 그리고 이것의 타자성은 '영혼'이라는 것 속에 있는 기억이라 불리는 그에 대한 상像일 뿐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 의해 요구되는 한에서만 오로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영혼{정신}이다. 데리다 평전" 표지binding이자 균열crack인 언어에 차연이 있고, 그래서 언어의 흔적이 상징象徵이라는 것이다.

 

"만물은 자신이 가장 천천히 늙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며, 중력은 만물을 그곳으로 이끈다. 「인터스텔라」, 킵 손" 천천히 피는 꽃, 아름다움이 아주 느리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기는 힘이 크므로 (트램펄린; 시공간), 앎의 무게로 삶은 침전된다. 삶과 앎의 사이 아름다운 휨, "휨이 휨을 낳는다. Warping begets warping." 휨이 휨을 낳기 위한 이무익비以无翼飛란, 중력 새총 비행gravitational slingshot을 통한 랑데부(우주상의 두 물체가 서로 만나는 것)다. 여기서 아름다움이 쫓는 것은 현상이고, 얻는 것은 형상이다. (눈의 영혼은 시각이고, 예컨데 아름다움의 시선이 영혼이다. 현상이 형상을 얻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신체 감각의 지나간 과거의 행위를 들춰내는 것이다. 무의식은 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행위의 관성이다. 따라서 감각 기관의 영혼은 오감5이다. 직관6은 이성과 본성DNA을 포함한다.) 앎의 무게로 생겨난 초공간(벌크, bulk)이 존재한다면 거기엔 정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4차원 공간에서 5차원 공간과의 공통 분자를 찾는다.) "인터스텔라에서 책들이 떨어지는 것을 머프는 5유령의 탓으로 돌리는데, 그런 현상이 중력이상gravitational anomaly이다. {−− −−− ·−· ··· · (space) −·−· −−− −·· ·},  " 상대를 끌어당기는 중력,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 의해 받는 중력에 의해 생겨나는 기조력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5차원 중력이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킵 손은 설명한다. 그는 만약 앎의 무게로 특이점이 형성되면, 벌크美의 공간은 반드시 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중력은 형상이고 현상이다.

 

"있는 것들 각각에는 그것들을 통해서가 아니면 앎이 생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고, 앎 자체는 네 번째 것입니다. 앎의 대상이며 참으로 있는 것인 것 자체는 다섯 번째로 놓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름이요, 두 번째는 정의요, 세 번째는 모상이요, 네 번째는 앎입니다. 플라톤 - 일곱째 편지 342a" "원"이라는 것이 "이름"이고, 구형이고 둥글고 어느 가장자리에서나 중심까지의 거리가 같다는 것이 "원"에 대한 "정의"이고, "그려지거나 지워지며 돌림판에서 돌려 만들어지거나 부서지는 것, 342c"이 원의 모상이고, 앎 자체는 네 번째 것이고, "앎의 대상이며 참으로 있는 것인 자체는 다섯 번째"로 놓여야 하는데, 그것은 능동적인 것poiēma(현상)과 수동적인 것pathēma(형상; 기쁨같은 감정 또한 형상이다)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 것이여야 하므로 말과 글을 포함한 "언어"는 불확정성과 불확실성을 가진 "예컨대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갑자기 혼 안에서 생겨, 341d"나는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있지만, 바탕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있다)]는 어떤 것 안에 있지만 한 부분으로서 들어 있지 않고, 또 그것이 있는 곳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 - 범주들 1a 25" 수동적인 기쁨같은 형상(형상 형形, 코끼리 상象)은 그 바탕이 되는 운동하는 능동적인 현상(나타날 현現, 형상 상像) 안에 있지만, 형상(감정)이 현상(휨)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상(아름다운 것, 살아가는 슬픔)이 없으면 형상(기쁨)은 있을 수 없다. 기쁨은 아름다운 것에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슬픔의 공간을 채우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현상現像(developing)하는 현상現狀(paused)으로부터 "언어"는 추상적인 상징(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이다. (이 범주가 소요학파의 언어이고, 따라서 이 불확정성 또한 아카데미학파의 언어이다.) "예를 들어, 흼은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즉 이 물체 안에 있으며, 이 바탕이 되는 것에 대해 서술된다. 물체는 희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흼의 뜻은 결코 그 물체에 대해 서술되지 않을 것이다. 2a 30" (중력렌즈 효과로, 앎으로 휘는) 삶은 아름답다고 말해진다. 슬픔은 삶 안에 있고, 삶은 슬프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슬픔의 뜻은 결코 그 삶에 대해 (슬픔의 공간을 채우는) 기쁨을 제외한 채 서술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 실체를 으뜸 실체라 하고, 제2 실체를 버금 실체라고 한다. 그럼 수많은 상들 가운데 어떤 꼴(정신, 일반적인)이 으뜸 실체인가. 상象을 제 3 실체로, 상像을 제2 실체로 한다면 생각하는(생각나는) 상상(생각 상想, 형상 상像)은 이상(헤겔의 정신ein Ideal; 다스릴 이理, 생각 상想)으로 나아간다. "으뜸 실체는 다른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장 본래적인 뜻에서 실체라 불린다. 2b 35"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는 '더와 덜'이라는 정도의 차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사람을 보았을 때 누가 더 사람이지도 덜 사람이지도 않다는 그의 주장("사람은 이전보다 지금 더 사람이라고 말해지지 않으며, 3b 35 - 4a")은 플라톤의 필레보스나 테아이테토스의 적도to metrion에 따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앉자 있음, 4a 35'을 동의하고,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했으므로,) 사피엔스가 되거나 네안데르탈렌시스가 될 뿐이다. 이 의미는 앎이 커질수록 실체는 계속 새로운 으뜸 실체를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현재라는 특이점(공통된 경계, 5a 10)이 정해지면 미래와 과거가 나뉘지는 것과 같다. 상像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양(5a 35)처럼 시간에 객관적이나, (빛이 시간을 관장하므로,) 우리가 으뜸 실체로 보는 특이점은 반대되는 것이 (아직까지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계, 6a"에서 '다른 임의의 방식으로hospōsoun allōs'을 설명하는데,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면 관성계에 따라 "더 큰 것은 더 작은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라고, 더 작은 것은 더 큰 것보다 더 작은 것, 6b 30"이라고 말해진다는 것이고, calvus clavati cavus, clavatum est clavo clavtum, 이 상호작용 관계의 범주에 드는 것은 서로 맞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대상이 없으면 (관찰이 없다면) 앎은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양자얽힘을 설명한다. "그것이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떤 것에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8b" 정신을 겪어 관성이 생긴다는 것 - , 물질의 색은 빛을 겪기 때문에 생기고, 다시 물질은 빛을 발하게 된다. "반대되는 것들 중 하나가 질이면, 나머지 것도 질이다. 10b 20" 따라서 (모순되지만) 정의라는 것은 관찰자의 범주에 달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빛色을 통해 상태空를 느끼는感) 기쁨의 형상은 (형상 형形 코끼리 상象, 즉 추상적인 모양,) 감각(느낄 감感, 깨닭을 각覺)이고,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이니, 반야심경", (공즉시색空卽是色, 현상이 형상을 얻는) 휨warping 현상은 (나타날 현現 모양 상像, 즉 구체적인 모양,) 예술(재주 예藝, 재주 술術)을 보는 것이다. 삶은 현상을 관찰하고 시선을 통해 형상을 맺는다. 아름다움은 (언어로 표현되고) 상징되어야 하므로 파동은 입자가 되고,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게 된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상징 없으며, 따라서 상은 파동으로 남게 된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언어를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모상에 가깝다고 설명하며, 언어(로고스, 이성)는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모사된 대상das Abgebildete'과 결부"되어 그 대상의 존재에 귀속된다고 덧붙인다. 삶의 아름다움은 앎에 귀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자는 무기체이다. 공기의 밀도 변화, 파동은 유기체다.) 프리초프 카프라에 의하면 그림자란 3차원(사실 4차원) 공간에 있는 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투영된 것이고, 덧차원에 있는 점들이 4차원 시공에 투영된 것은 {−− −−− ·−· ··· · (space) −·−· −−− −·· ·}이다. (후자는 사변이다. 사변이란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칸트의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중력이상gravitational anomaly이 있다. 이것을 기초로한 사변은 연역적 추론에서 귀납적 추론으로 이어져야 하고, 따라서 다윈의 귀납적 추론으로 상대론의 연역적 추론을 사변할 경우, 우리는 진리내지는 으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의 연역적 추론이란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유도하는 추론 방법"이고, 귀납적 추론이란 "개별적인 사실이나 현상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전제로 일반적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론 방법"이다.) 헤겔은 종을 교양으로 본다. 여기서 종은 형태소(morpheme, morph모양, -eme최소단위)를 말한다. 그리고 교양Bildung에는 Bild(image; 상像)이 들어 있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형태를 갖춘'informare, 고대그리스 form이란 모양morph, 모양을 빚는자morphai, 모르핀morphine이고, 가다머는 Bidung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formatio(형성)이라고 설명한다. "Bildung{교양; 라틴어 eruditio는 교육.학습.지식.학식}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formatio(형성)이고, 외국어에서, 예컨데 영어에서 이에 상응하는 것은 form과 formation이다. 독일어에서도 forma 개념의 파생어들, 즉 Formierung과 Formation이 있는데, 이것들은 오랫동안 Bildung이라는 낱말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진리와 방법」" 형성(형상 형形 이룰 성成)이란 헤겔의 절대정신(absoluter Geist, absolute spirit)이다. 느끼고 깨닮는 감각5은 어떤 형태를 갖추어informare 형성formatio, 즉 종이 된다. 그리고 사변을 통한 직관은 (아직은 막연하나) 지식을 기초로한 순수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절대정신으로 설명된다. Gaia, from legend to myth- 랑데부Rendezvous의 중심에는 중력이 있다. (이것은 개별적인 사실이고, 402-, 우리는 중력의 원리Principia를 이끌어내야 한다.) 색空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 (중력장.) 현상이 형상을 얻으면 공空의 새로운 장의 공간(토포스topos)은 휘게된다. ¨그리고 살아가는 슬픔, 아름다운 기쁨. 거센 파도는 새하얀 포말들을 개워낸다.¨ 가다머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는 이해Verstehen다. "그렇게 보면 어떤 형태의 이해든 간에 이해를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기투한다고 할 수 있다. 이해라는 것은 현존재의 근원적인 실현형식, 세계-내-존재이다. 「진리와 방법」" 독일어에서 이해Verstehen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가능성"이고, 기투Entwurf란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신을 내던지는 실존방식'이다. 예컨데 살아간다는 것은 형식(형상 형形 법 식式)을 의미했고,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은 내용(지평Leerhorizont, 가다머; 형성形成)이었다. "(언어는)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대신에 어떤 것과 관련해서 탄생한 그 지식에 대한 전체를 갖는다nihil de suo habens, sed totum de illa scientia de qua nascitur. 「진리와 방법」" 언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아가 정신을 형성한다.

 

가다머는 (전자electron의) "현상"(나타날 현現 코끼리 상象)을 알고자 관찰하는 이유를 되집어 보고자 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문제를 보는 시야를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가 미지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해답 역시 미리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결정적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불확실하다. 물음의 핵심적 의의는 이처럼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도 의문인 채로 열어두는 것이다. 예: 플라톤의 대화편들, 「진리와 방법」" 물음의 본질은 현상에 대해서 제시되는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시선에 주어진 형상은 현상의 현현(본질적인 것이 외적으로)이다. 의의-, 사진을 찍는 이유는 "형상"을 얻고자 함이다. *가다머는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는 명제에서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을 '상대방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이해한다는 것'(상대가 되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으로 해석Hermeneutics한다. 이 텍스트의 헤겔적 해석은 이 상황이 이미 경험을 넘어 사변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언어로 예술은 앎의 가상이다. "경험적인 것은 그것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 사변적 개념이다. 헤겔" 휨의 현상을 보는 것, 예술이 가상을 산출하는 것이 헤겔의 "표상의 표상"이다. "그려진 사자는 우리에게 표상의 표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헤겔" 예컨데 추상적인 형상이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는 것, "이념(선.진.미)의 감각적 현현, 헤겔"이 바로 현상이다. "내용은 사상이며, 형식은 감각적인 것, 형상적인 형태이다. 헤겔" 살아간다는 것은 형식이고 감각적인 것이며, 공즉시색, 느끼고 깨닮는 감각은 어떤 형태를 갖추어 형성되는 것, 곧 형상적인 어떤 형태이다. (낭만적인 자기-내-존재das Insichsein로 부터) 세계-내-존재는 내용이자 사상이며, 따라서 현상이 형상을 얻는 과정인 예술은 (인륜적인) 생래적 "정신"을 통해서다. 헤겔은 자유로운 예술가A Ս B 형상적bildend이라 하고, 상징적 예술가Ac Ո B = B \ A 상상적einbidend라고 규정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표상과 더불어 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예술가는 "우리에 대해 현상하는 것이므로" 즉자대자적이고 완결적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예술가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Parole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한정짓지 못하고 상상에 머문다. 생각나는 상상이 이상ein Ideal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 4차원에서 초입방체 테서랙트를 보는 듯, 관찰자는 머리속에 그려지는 형상으로 상징Langue을 말 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A △ B 전제 하에 단독적인 Ac = U \ A  A Ո B 이다. (A Ո B  Justice다.) 헤겔은 엔치클로페디에서 정신이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으로 동요하는 자요, 순수한 활동"이라 밝혔고, 피히테 역시 존재는 "행위하는 자인 동시 행위의 산물"이자 "활동하는 자인 동시 활동에 의해 산출되는 자"라고 지적한다. (로타 엘라이는 피히테의 코기토는 바로 "사유의 사유, 자기에 관계하는 활동"이라고 덧붙인다. 피히테는 나아가 사유가 없다면 존재도 없으며 교차관계인 둘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유의 사유"는 일반적인 사유가 아닌 "존재의 사유"다.) 피히테가 「전 학문론의 기초」에서 언급한 첫번째 동일성의 원칙은 A = A 이고, 두 번째 근거의 원칙은 -(-A) = A . A (자아)라고 하면, 비아(나 밖의 모든 것)가 아닌 것은 바로 나다. 세 번째 '자기의 형식에 따라 제약된 원칙'은 "자아로서 스스로 활동적인 자아"이자 현상이고 형상이다. 현상을 보는 A 형상을 얻는다. 그리고 (시간이 있 칸트의 순수이성에 따라 순수정신이 있고,) 형상은 반드시 표상되므로 A Ո B  성립된다.

 

현상 형상이다. "바다는 바다이고, 공기는 공기이며, 달은 달이다. 헤겔" 그럼 "내가 나비인가. 나비의 꿈胡蝶之夢" 색불이공色不異空,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관자재보살. 슈뢰딩거는 무엇을 보았나5. 뉴턴의 "아름다운" 운동법칙에 따라 4차원 두 물체가 충돌하여 주고받은 충격량의 합은 0이어야 한다. 라이프니치에 따라 "어제를 등에 업고 내일을 뱃속에 넣은 오늘" 우리의 상像은 추론에서 직관6으로 84.5%를 가늠하고 있다. 추억은 상.쾌.했던 관성의 그림자다. (여기서 상上은 객관적이다.) 우리는 달을 보고 있지 않으면서 월광 소나타에 취되어 있다. 쑥-대강이 '전전반측 잠 못 이뤄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 이상(다스릴 이理, 생각 상想)이란 꿈꾸는 것이다. 현상과 형상 사이 교량이 인연생기因緣生起다. 불확실성에서 플라톤은 (되려) 질문한다. ¨불재하처(떨칠 불拂 있을 재在 어찌 하何 곳 처處)? 자, 견지망월(볼 견見 손가락 지指 잊을 망忘 달 월月)? 다시, 달은 달이다.¨ 공중무색空中無色이란 공 가운데 색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아무 것도 없는 무색色인 상태空다. 그러나 이러한 즉자존재(데미안의 아브락사스, 즉 자기 충족적인 존재)를 관찰함으로써 인연이 맺여져 휨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히테가 설명하는 인간의 언어는 가다머와 다르지 않다. 가다머는 언어가 "모상"에 가깝다 했고, 피히테는 언어란 초감각적인 감각을 포착한 인간이 상대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감각적 그림"이라 설명한다. 피히테가 말하는 "초감각적인" 감각이란 물은 물이고, (물은 수소와 산소이며), ether, 즉 "이 감각"은 물과 불과 공기와 흙이라는 것이다. 형상形象- "이 그림이, 학생들 자신의 독립된 활동에 의해 작성하되 결코 수동적으로 파악된 것이 아니고, 또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여부를, 또 그 그림이 명확성과 생명으로 승화되어 있는가의 여부를, 이 교육이 앞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방향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선, 이 인식이 실제로 ¨참다운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영원히 상주할 ¨촉감각적 세계 질서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학생의 독립 활동에 의해서 그의 마음속에 그리게 하여 그로 하여금 그 필연적인 성질을 깨닫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데(Idee, 이념)는 독일어의 게지히트(Gesicht, 환상, 환영)과 동일한 감각적 그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루터가 성서의 번역에서 '너희는 환영을 볼 것이다. 너희는 꿈을 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징¨이다. 독일국민에게 고함, 피히테" 여기서 (기수는 현상을 보여주고,) 학생은 "교양"morpheme을 배운다.

 

야스퍼스는 운동(분열)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은 "현상" 뿐이며, 색은 위한 것이고, 객관적으로 파동, 현상이 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색깔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전자파가 감각기관에 작용함으로써 주관적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다만 파동이 있을 뿐이며 세계 자체는 색도 없고 빛도 없다. 야스퍼스, 철학학교" 물질 표면에 들어나는 색은 빛이 물질을 통과할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색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나머지 색을 말한다. 우리는 빛의 파장이 가시광선400-700nm 안에 들을 경우 시각을 통해 물질이 반사하는 색으로 사물을 구분하고, 촉각으로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 또한 느끼며, 청각으로 소리의 파동을 감지하고, 후각과 미각을 동원해 신경이 물질을 감지하여 만든 전자파장을 뇌로 보내 상 떠올린다. 따라서 존재란 색, 야스퍼스의 말대로 주관적인 대자존재이며, 빈 것이 곧 물질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이란 색이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것, 달리 말해 물질form이 아니라면 그것은 빈 것, 공이다.


"신들조차 그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영원한 행복을 버리고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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